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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특훈교수, 중앙일보 "소프트파워" 기고 - <기억과 흔적>

  • 이석호
  • 등록일 : 2013.04.05
  • 조회수 : 1471

기억과 흔적

 

 

정진홍 특훈교수

 

 

 # 지난 수요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두 개의 특별한 전시가 동시에 문을 열었다. 하나는 ‘금은보화, 한국 전통공예의 미’라는 전시였고 다른 하나는 ‘미장센-연출된 장면들’이었다.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세련된 화면 속 시각 구성의 ‘미장센’ 전시보다도 다소 투박하고 직선적인 제목의 ‘금은보화’전이었다. 한국 고대부터 근세의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이름 모를 장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금은보화 공예품에 담긴 촘촘하고 은근하며 정치(精緻)한 예술성을 재발견하는 놀라움과 재미와 가슴 벅참이 함께 어우러지는 참으로 보기 드문 전시였기 때문이다.

 

 # 그런데 ‘금은보화’전에 은근한 감동을 더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전시에 활용된 디지털 기술이었다. 작고 오밀조밀한 진품 공예품을 360도 각도에서 속속들이 촬영해 고해상도의 디지털 화면으로 확대·축소를 자유롭게 해가며 세밀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한 덕분에 이전엔 자칫 지나쳐 버렸거나 아예 보지 못했을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천 년 넘는 세월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장인의 숨결과 손길을 고스란히 함께 호흡하고 더듬는 기쁨이었다. 아날로그의 정수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재발견되고 재탄생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이자 고고학자였던 구스타프 6세가 고분 발굴에 함께 참여해 1500년 가까이 잠자던 신라의 왕족 여인을 깨웠을 때 그녀의 머리 부분에 씌워져 있던 것은 5세기께 만들어진 화려한 금세공의 관이었다. 이름하여 ‘서봉총(瑞鳳<51A2>) 금관’(보물 339호)이 그것이다. 인신(人身)의 흔적은 오간 데 없지만 그 황금빛 화려함은 천 년의 세월에도 변함이 없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께 만들어진 손바닥 크기만 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말마따나 잘록한 허리와 전신에 늘어뜨린 영락(瓔珞·구슬 다발)과 몸을 감싼 천의(天衣) 사이로 드러난 자태가 육감적이다 못해 매혹적이었다.

 

 # 고려 후기인 14세기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은제사리기’는 은으로 만든 팔각형 프레임에 은사(銀絲·은실)로 촘촘하게 꽃 문양을 아로새기고 뚜껑에는 연꽃손잡이를 만들어 붙인 사리함이다. 언뜻 보기에도 우리의 전통적인 사리기와는 사뭇 달라 인도나 서역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독특하다. 그런가 하면 고종이 광무(光武) 원년 즉 1897년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꿔 선포하고 ‘칭제건원(稱帝建元)’한 것을 기념해 제작하도록 한 ‘명성황후 책봉 금책과 금보 및 함(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해 전인 1895년 을미사변 때 궁에 난입한 일본인 낭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시해된 ‘왕후 민씨(명성왕후)’를 ‘명성황후(明成皇后)’로 다시 책봉하는 데 쓰인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그것들을 바라보며 “죽어서 황후가 된들 그 처절한 한을 어찌 잊고 어찌 풀겠는가?” 싶은 상념을 떨치기 힘들었다.

 

 # 하지만 ‘금은보화’전에서 내 마음을 가장 끌고 긴 여운마저 남긴 것은 다름 아닌 5~6세기께에 만들어진 ‘상감 유리구슬’이었다. 이 구술은 미추왕릉 C지구 4호분에 묻혀 있던 이름 모를 신라 여인의 목과 가슴 부위에서 출토된 것이나 서역에서 전해진 것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실제로 신라는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며 넘나든 국제적으로 열린 나라였다. 이 상감 유리구슬에 붉은색 마노, 비취색 벽옥, 투명한 수정을 함께 꿰어 복원한 목걸이는 디자인과 빛깔 모두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상감 유리구술 안에서 붉은 입술을 지그시 다문 채 크고 형형한 눈빛으로 구슬 밖의 나를 응시하는 듯한 이목구비 또렷한 여인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아련한 추억에 빠져드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어쩌면 휘황한 ‘금은보화’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 바로 그 시공을 초월한 사람의 기억과 사랑의 흔적이 아닐는지!

 

정진홍 논설위원·GIST 다산(茶山)특훈교수 / 중앙일보 3월 30일자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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