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ltimedia mosaic of moments at GIST
이공계 출신도 대우받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공부 단단히 시킬 겁니다.”
올해 처음 2010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는 광주과학기술원에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각오를 해야 할 듯하다. 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원장은 한국의 대학들이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며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광주과학기술원법에 의해 설립된 국가기관인 광주과학기술원(GIST:Gwangju Institute of Science & Technology)은 1995년 설립돼 1997년 첫 대학원 졸업생을 배출했다. 매년 300여 명의 대학원생이 입학하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100명 단위의 학부생들도 뽑는다. 학비는 전액 무료이고 기숙사가 제공되며 방학 중 2개월간 해외 어학연수도 무료로 보내 준다.
내년 학부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현재 연구동 2개, 학생 기숙사, 교수 숙소를 짓는공사가 한창이다. 선우 원장을 인터뷰하는 날에는 대학원에는 없었던 인문 계열의 교수를 새로 뽑기 위한 채용 면접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학부생을 선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세계의 그 어느 대학도 대학원만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처음에 대학원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학부과정을 만듭니다.
그 이유는 대학원 교육이 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대상으로 기초적 지식 없이 연구 능력만 키우는 것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부과정 학생을 뽑아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됐습니다.
학부 운영 철학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백그라운드라는 것은 인문·사회 분야를 충실히 교육받은 학생을 배출해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문·사회과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공계 교육은 자칫하면 편협한 사고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인문 분야, 즉 역사·철학·종교·문학은 하나의 자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지도 작용하지만, 그런 자연을 배우는 것도 기술입니다. 이공계 연구에 굉장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타 대학과 다르게 인문·사회 분야를 강조할 것이고, 이것이 지스트(GIST)의 특성이고 차별화입니다.
학비 면제와 어학연수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지스트뿐만 아니라 정부가 100% 투자한 대학이 많습니다. 사관학교와 경찰대 등이 있는데, 왜 국가가 전액 부담하느냐고 하면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국방·치안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에서도 국가가 양성하기 위해 전액 국비 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우수 학생들이 오면 다행이고요.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뒤떨어진 표현입니다. 외부에서 그렇게 볼지는 몰라도 기본 철학은 아닙니다.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와는 경쟁 관계가 되는 것입니까.
경쟁이라기보다는 보완적 관계죠. KAIST 수용 인원도 연 몇 백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 정도로는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다 수용하지 못할 겁니다.
국비로 교육받은 뒤 카이스트에서처럼 졸업 후 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등으로 가면 세금 낭비 아닙니까.
졸업생들이 우리 학교 석박사로 오면 좋고요, 졸업생들이 더 다양해지려면 꼭 여기 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헤테로지니어스(heterogenous:이종간의)해야지 호모지니어스(homogenous:동종간의)는 좋지 않아요. 동물들도 섞여야 강해지지 않습니까. 인브리딩(inbreeding:근친교배)은 학문 분야에서는 좋지 않아요.
(이와 관련해 학부과정을 담당하게 될 이관행 학장도 “반대하지 않는다. 졸업 후에 동창생들이 의사 변호사 등 직업이 다양해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 연구원들만 있으면 뻗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고 얘기했다.)
학생들이 이공계로 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공계생들이 의대에 많이 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미국 등의 선진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국가의 장래가 밝지 않습니다. 발전할 여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공계로 우수 인재가 몰리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왜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돈과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닌가요
당연히 이공계 졸업자도 돈과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요. 사시 합격자를 보십시오. 그렇게 높은 대우를 해 주는데 우수 인력이 갈 수밖에 없지요.
의사는 돈 많고 평생 안정된 생활을 합니다. 과학기술계가 그렇게 되면 왜 가지 않겠습니까.
1960~70년대는 굉장히 우수한 사람이 이공계로 갔습니다. 그때 정부가 이공계 학생들을 얼마나 우대해 줬습니까. 당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들어가면 자동차 비과세에 집도 주고, 봉급도 많이 주고, 심지어 ‘국가과학기술자’ 자격증을 줘 통행금지도 면제해 줬습니다.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들이 외국에서 유학하고 귀국했습니다. 그것이 1980년대 성장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지금은 말로만 이공계를 살리자고 외치지 실제로 하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전에는 정부가 왜 그런 짓을 하나 생각했었는데, 기능올림픽에서 1등 하면 김포공항에서 카퍼레이드로 시청까지 들어옵니다.
당시는 의아했는데 그런 것들이 기술자가 되면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는 계몽이었고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양복 기술자가 ‘국가기능사’ 자격증을 가지면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전반적으로 정부가 과학기술자 우대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지금 일반 기업에는 엔지니어, 기술자들이 최고경영자(CEO)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성과 LG가 세계적 기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부에 1급 공무원 가운데 기술자가 있습니까. 거의 없을 겁니다. 중국을 보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전기기술자가 아닙니까.
100% 영어 강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학부에서 이렇게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을 겁니다. 타 대학 중에 대학원에서는 일부 시작한 곳도 있고요. 100%까지는 아닙니다. 인문·사회 과목은 숙련될 때까지는 국어와 병행할 계획입니다. 교수들과 의논해 봐야겠지요.
학사 관리를 굉장히 엄격하게 할 것 같습니다. 대학 생활의 낭만에 대해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타이트하게, 굉장히 타이트하게 할 겁니다. 대학 생활의 낭만은 여가 시간에 해야지요.
낭만이라고 해봐야 만날 술만 마시지, 요즘 낭만을 찾습니까.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너무 안 합니다.
미국 대학생들에 비해 절반이나 할까요. 4년 동안의 토털 학습량을 따지면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에게 상대도 안 됩니다.
이래서 사회 나와서 어떻게 그들과 경쟁하겠습니까. 그 사람들과의 토론, 가능할까요. 지스트가 지향하는 것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지금의 다른 대학교들은 하려고 해도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와서 조교수를 하는데, 매주 시험을 치르고 채점을 하니까 다른 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혼자서 맡아야 하는 학생 수가 너무 많은 겁니다. 결국 저도 한 학기 만에 손을 들고 말았어요.
공부를 시키려면 일단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적어져야 돼요. 또 조교가 있어야 하고 도서관의 책들도 많아야 합니다. 국내 사립대는 절대 이렇게 못합니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고, 학비가 지금 수준이라면 재정 때문에라도 불가능합니다. 지스트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적고 교수·대학원생은 많습니다. 강한 교육이 가능하고 그것이 강점이고 차별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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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겁을 먹고 들어오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요.
대학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비가 더 비싸져야겠네요.
사립대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등록금이 더 비싸져야겠지요. 미국처럼 3만~5만 달러를 받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 주고 비싸게 받는다면 뭐라고 하겠어요.
그렇지만 당장은 힘들 겁니다. 지금은 학교도 공부를 못 시키고 학생도 공부를 안 하니 경쟁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선우중호 원장은…
1940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73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토목공학 수문학 박사. 74~95년 서울대 교수, 공과대 학장. 95년 서울대 부총장. 96~98년 서울대 총장. 2000~2004년 명지대 총장. 2005년 국무총리실 용산공원추진위원장. 2008년 광주과학기술원장(현).
<2009.7.20 한경비즈니스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