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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자매지인 월간 넥스트 1월호 특집 “[한국의 미래 희망은 어디에]”에 실린 김경웅 교수의 원문>
인재강국으로 / 글로벌 탤런트의 인재 육성은
경쟁 상대는 세계…맞춤 교육을
김경웅 _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 국제화센터장
성장의 동력, 그러나 국내용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대학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한국전쟁의 폐허더미를 딛고 현재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중요한 원동력이 교육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 중인 동남아 국가들을 방문할 때면 그곳의 동료들로부터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있는 높은 삶의 수준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무엇인가라고 많은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늘 교육의 힘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생각해보라. 석유와 같은 변변한 부존자원 하나 없이, 50년대만 해도 필리핀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보다 훨씬 낮은 1인당 국민소득의 한국이 아니었던가? 그런 나라가 반도체·휴대전화·PDP·자동차 등 기술 집약적인 산업 분야에서 세계 선진국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된 것은 분명 교육의 힘일 것이다.
일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입시 지옥”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 하지만 이런 혹독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도록 교육을 받는 것이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바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국제적인 기관에서 발표한 글로벌 대학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게 되어 교육의 힘으로 일어선 나라로서 우리의 자부심은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학들의 자기반성이 이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이 행하여지고 있는지를 점검해보고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본 글에서는 국제화된 경쟁시대를 선도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 과연 대학 교육이 어떻게 변하여야 하며 무엇에 역점을 두고 교육이 행해져야 하는지를 논해 보고자 한다.
완벽한 외국어 구사 능력은 기본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능숙한 언어 구사 능력은 기본적인 것이다. 물론 현재의 글로벌 대표 언어가 영어인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과연 우리의 영어 교육은 어떠했는가?
본인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1980년대 말 영국에서 수학하던 시절, 필자 나름대로 어학준비를 하고 유학을 갔으나 막상 입학하고 보니 주변의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출신 유학생들보다 본인의 영어 구사 능력이 한참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강의나 몇몇 세미나 같은 모임에서도 본인은 의사표현을 하기는커녕 전혀 알아듣지 못해 강의노트를 빌리러 여기저기 뛰어 다닐 때에 그들은 당당히 영국 학생과 토론하고 있었다. 영구 학생이나 교수왕의 대화에서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유학 초기에는 아예 능력이 없는 학생으로 분류되는 수모도 참아야 했다.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니 자신의 능력을 전달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에서 “Pull over(차를 길옆으로 세우시오)”라는 간단한 말을 이해하지 못해 떨어진 동료 유학생도 보았고, 방학을 이용하여 연수를 오시는 많은 한국의 영어 교사들께서도 현지에 도착하여서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정확한 영어 구사 능력이 부족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제는 입시나 취업을 위해 추구하는 점수를 따기 위한 시험용 영어 교육은 쓸모가 없다. 듣고 말하기가 필수이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많은 강의가 영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욱 많은 외국 유학생을 받아들여야 하며 외국의 우수한 인재들을 우리 대학의 교수로 영입하여야 한다.
외국의 인재를 교수로 영입하기 위해서는 국내 대학의 교수 및 직원들로부터 현재까지 누려온 특혜를 모두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외국인 교수와의 치열한 경쟁을 물론 감수해야 하고 교수회의, 모든 중요 문서 등도 모두 영어로 작성하여야 한다. 회사에서도 외국인 CEO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직원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홍콩의 경우 대학 캠퍼스를 ‘English Speaking Zone"이라 정해놓고 대학에서의 모든 강의, 문서 및 시험 등을 영어로만 진행한다. 도서관에서도 학생 식당에서도 영어를 사용하도록 규정지어져 있다. 그러기에 외국 학회에서 만나 본 홍콩의 대학원생들은 한국의 유학생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한다.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아 세계 경제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목을 국내에 국한시키지 말고 전 지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톱클래스 기술을 보유하는 글로벌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며, 이 시대에 각 대학이 맡아야 할 책임이라 하겠다.
스웨덴을 여행하다보면 거의 모든 국민들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중 ․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히말라야 자락의 작은 국가인 네팔도 영어 교육에 관한 한 우리보다 앞서 있다. 공립 중․고등학교 중에서 영어로만 강의를 하는 학교가 일부 있고 네팔 최고의 대학인 트리뷰반(Tribhuvan)대학교에도 우리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외국인 교수가 있다. 이러한 외국인 교수가 영어로 강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제라도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영어로 하며,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영어 강의 능력을 본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한 발전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대학에서는 외국 유학생을 불러다 놓고 한국어로 강의를 하며 심지어는 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한국어 배우기를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언어를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다른 문화․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
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경쟁하며 버둥거리고 있는 이 한반도 안이 얼마나 좁은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바깥의 세상은 얼마나 넓고 그 넓은 세상에서는 또 얼마나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글로벌 스케일의 인재가 되려면 국제적으로 폭 넓은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식과는 다른 사고방식에 부딪혔을 때에도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몇몇 예를 들어본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이고 국민의 70% 이상이 이슬람교도이기에 음주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옷차림과 예의범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이다. 강의를 할 때는 꼭 정장에 넥타이를 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 가서 바이어들과의 상담을 술자리에서 하고자 한다든지 더운 날씨를 핑계로 반팔 셔츠차림으로 공식 모임에 나간다거나 하면 상대방에게 뜻하지 않게 불쾌감을 주게 될 것이다.
요즘 한류 열풍에 열광적으로 빠져 있는 베트남을 보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 사람들은 한자를 더 이상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한자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상용 단어가 한자에서 유래되었을 뿐 아니라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국자감”에 가보면 공자의 사상이 그들 정신세계의 뿌림임을 잘 알 수 있다. 우리와 유교 문화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기에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다. 한국 드라마의 주요 소재인 고부간의 갈등, 성공한 배우자의 변심, 부모의 결혼 반대 등의 내용이 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스승과 부모, 나이든 어른을 공경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거역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경험해 본 국내의 몇몇 베트남 유학생들은 지나치게 순종적이어서 적극적인 모습이 다소 부족하다고 하겠다. 과거 순종적인 자세로 교육 받아온 대부분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외국에서 받았던 평가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각자 자존심은 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순하고 순종적으로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만은 절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소 민감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정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고 국왕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화제에 오른다.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 출신 동료들은 왕가의 존재에 대해 국왕이 없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다. 태국의 푸미폰 야둔야뎃 국왕은 지난해 6월에 즉위 6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태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아무리 가까운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라도 그를 가볍게 여기는 투의 말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의 모든 국왕들이 그런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정치 ․ 사회 및 문화를 우리가 직접 나가서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나가서 접하지 못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많은 노력을 들여 초청해 온 외국 유학생을 교육시켜 돌려보낼 때에는 그들의 특성을 최대한 파악하여 장차 글로벌 시대의 우리의 숨은 지지자가 될 수 있는 ‘친한파’로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톱클래스 기술, 인재 배출에 노력해야
위에서 언급한 언어 및 다양한 안목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제 우리는 국제적인 경쟁 시장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총을 들지 않고 전장에 뛰어드는 병사가 있을 수 없듯이 우리 자신만의 톱클래스 기술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국제무대에 뛰어 들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경쟁 상대는 국내에 있지 않다. 전 세계인이 우리의 경쟁자인 것이다.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은 지난해 9월의 혁신 페스티벌에서 “미국이나 유럽 사람보다 잘 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면 글로벌화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이야기로 이러한 상황은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의 교육에도 적용되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국내에서 좋은 대학교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대학들은 실력보다는 자신을 잘 모시는 제자를 자기의 후임으로 임명하는 동종교배가 난무하고 수십 년간 사용하여 누렇게 바랜 노트로 강의를 하며 이를 연륜으로 자랑하는 그러한 교육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대학은 변하여야하며 이런 변혁의 주체는 그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스스로 바뀌어야 할 대상은 교수들이다. 교수들도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경쟁하여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는 스타급교수로 그 만큼의 보상을 받을 것이며 이에 낙오되는 자는 보따리를 꾸려야 할 것이다.미국 교수들의 정년 보장을 위한 피 말리는 경쟁제도는 잘 알려져 있으며, 독일의 경우도 같은 학교에서 교수로 승진하기 어려운 특이한 정년 보장 시스템이 있다. 독일에는 두 가지 단계의 교수가 있는데 하위 등급에서 상위 등급으로 올라 갈 때 반드시 다른 학교로 옮겨야만 승진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에도 대학 스스로 자율적인 인적자원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독일과 같은 인위적인 강제 수단으로라도 교류를 활성화해야만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톱클래스 수준의 교육이 가능할 것이며, 이러한 다양성의 교육을 바탕으로 해야만 톱클래스의 기술을 가진 최고의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작은 면적에서 적은 인구로 모든 분야에 톱클래스 기술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각 대학은 자신만의 특성분야를 정하여 인적 교류를 통해 이러한 분야의 연구 인력을 자신의 대학에 집중시켜 세계의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그런 인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기업도 대학 교육에 참여를
글로벌 시대의 인재 양성을 대학에만 맡기며 기업이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다. 많은 기업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체에 들어 온 인재들은 대학 교육 커리큘럼의 문제로 당장 쓸만한 인재는 하나도 없고 6개월에서 1년간의 재교육을 해야만 회사에 쓸모 있는 인재로 탈바꿈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은 대학의 교육에 기업들이 많은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것이다. 요즘 많은 대학들이 기업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표방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국내 대학의 공대 재학생에게 방학 기간 실질적인 산업 현장 인턴 연수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으나 현재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이공계 졸업생들이 회사에 취직을 하면 자기계발도 어렵고 퇴직도 빨라 취업보다는 전문직 자격증을 따기 위하여 방황을 하며, 기업들도 또한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서로 불평을 한다.
문제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를 따지기 전에 우선 기업들이 가슴을 열고 우수한 인재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단지 졸업 후에 좋은 인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기보다는 재학생 시절부터 인턴제도 등을 통하여 우수 인재를 선점하여 관리하며 자신이 원하는 인재로 교육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스 대학의 교육 중 이공계 학생들에게 졸업 요건으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의 해외 인턴 경험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도 고려할 만한 사항으로 대학 졸업생의 논문이 반드시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되어지는 시스템이 생기기를 바란다.
이러한 현장 경험 이외에 대학 교육에 필요한 점은 학생들로 하여금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중국은 모든 산업 분야에서 우리를 추격해 와 이미 많은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되었으며, 일본은 일찌감치 일본국제협력기구(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등을 통하여 동남아에 투자한 후 이제는 경제성 있는 비즈니스를 시작하여 그 투자를 회수해 나가는 시점에 있다.
그 결과 이미 베트남 등 많은 동남아 국가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제 오토바이가 대도시를 누비고 다니며, 네팔에까지도 마루티 스즈키(Maruti Suzuki)라는 이름의 소형 차량을 판매했다. 이제는 기술만을 가지고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자신의 기술을 세일즈 해야 하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대학 자체적으로 교육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기업들과 경쟁하는 기업체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학교육에 공헌해야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서 언급되어진 인재들이란 국내의 인재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우리의 시장이 되어질 세계 각국에서 온 인재들도 포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살아남아 세계 경제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국내 대학이 나아갈 방안을 짧게나마 요약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안목을 국내에 국한시키지 말고 전 지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여 그 안에서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하는 자산만의 경쟁력 있는 톱클래스 기술을 보유하는 글로벌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며, 이들을 배출해 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각 대학이 맡아야 할 책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