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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특훈교수, 중앙일보 "소프트파워" 기고 - <순천만의 호위무사>

  • 이석호
  • 등록일 : 2013.10.21
  • 조회수 : 2131

 

순천만의 호위무사

 

정진홍특훈교수

 

 

   # 지금이야 갯벌의 소중함과 유용함을 잘 알지만 개발시대에 갯벌은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져 이를 간척해서 농지로 만드는 것이 능사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낙동강·영산강 하구를 막은 것은 물론 아예 새만금처럼 바다에 금줄을 치듯 방조제를 쌓는 것을 대단한 역사로 자랑하던 것이 엊그제였다. 그런데 순천은 남들이 가는 방향과 달리 갔다. 간척을 하는 대신 갯벌을 지켰다. 그 덕분에 남다른 미래를 만들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미래를!

 

 

 # 뒤늦게 갯벌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이들이 메웠던 간척지를 다시 갯벌로 복원하는 일까지 벌일 만큼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값으로 헤아리기 힘들다. 짱뚱어와 칠게·농게·방게·도둑게 등 온갖 것들의 삶터이자 놀이터인 갯벌은 뛰어난 정화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산소를 발생시키는 생명의 터다. 그래서 약 2000만㎡(약 600만 평)가 넘는 순천만 갯벌에는 온갖 철새가 찾아 든다. 특히 여름에는 저어새가, 겨울에는 흑두루미와 검은머리갈매기 등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것은 거저 이뤄진 일이 아니다.

 

 

 # 22년 전인 1991년 한 아이가 논에서 다리 다친 흑두루미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겨울만 되면 순천만 사람들이 갯벌 갈대밭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다리를 다친 흑두루미는 무리에서 낙오됐던 것 같았다. 흑두루미를 집으로 가져온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치료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이 흑두루미를 자기가 다니던 순천남초등학교로 가져와 선생님과 상의 끝에 ‘두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학교 새장에서 키우게 됐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우연히 학교를 찾은 동물병원 원장이 흑두루미가 학교 새장에 갇힌 것을 보고 시베리아 귀환 프로젝트를 펼치자고 제안했고 순천 지역 환경보호단체가 이에 발벗고 나섰다. 1년 후 ‘두리’는 시베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는 구경조차 쉽지 않았던 흑두루미가 2003년에는 100여 마리로 늘어나더니 다시 10년 후인 2012년에는 660여 마리나 찾아왔다. 순천만의 사람들은 철새들의 안전을 위해 인근의 280여 개의 전봇대를 제거했고 비행고도를 제한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제 순천만은 흑두루미만이 아니라 노랑부리저어새·고니·백로·황로·왜가리·도요새·검은머리갈매기 등 새들의 천연 유토피아가 됐고 가히 지구상에서 가장 온전하게 보존된 세계 5대 연안습지 중 하나가 됐다.

 

 

 # 지난봄 순천만 정원박람회를 연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순천만이 그 자체로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정원일진대 왜 그곳에 인공정원을 조성해 박람회를 한다는 것인가 하고! 하지만 6개월여의 박람회 일정이 다 끝나가는 지난 수요일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순천만과 정원박람회장을 꼼꼼히 둘러보고 나서야 그것이 함께있어야 할 진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한마디로 정원박람회는 순천만을 지키기 위한 호위무사였다. 도시의 팽창이 순천만을 범하지 못하도록 아예 정원박람회가 조성한 숲과 나무와 꽃들이 생명의 정원인 순천만을 지켜내기 위한 거대한 에코벨트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열렸던 정원박람회는 일단 내일로 기한을 다한다. 하지만 순천만의 호위무사로의 정원박람회장의 역할은 이제부터 더 본격화돼야 한다. 이를테면 순천만 입구까지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순천만의 주차장을 폐쇄하고 대신 정원박람회장에서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친환경 트램(저상열차)이 본격 가동하도록 하는 등 에코벨트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순천만 정원박람회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420여만 명이 다녀간 정원박람회장이 그저 한때의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지구정원 순천만의 영원한 호위무사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생명에 대한 투자가 계속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2013년 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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