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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Excellence

백운출 교수 물리학회 기고

  • 강호종
  • 등록일 : 2010.03.29
  • 조회수 : 4301

 

 



[2009 노벨물리학상]



광통신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다









백 운 출 (GIST 정보통신공학과 명예교수)



                                   





             



 



60년대에 와서 레이저의 이용이 본격적으로 생산기술의 일부로 등장하게 되고 특수분야에서 그 기술의 고유성이 인정 되면서 이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은 레이저 응용의 일환으로 광통신에 대한 개념적인 막연한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간혹 비금속 도파로에 대한 논문은 발표 되었으나 구체적으로 광통신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 예를 들면; 도파로의 크기, 광학적 구조, 최저 전송손실 등, 통신시스템을 구현 하는데 필요한 데이터 등은 전혀 언급 되어 있지 않았다.



 



1966년에 와서야 그 유명한 카오 박사의 논문이 발표 되었고 그의 논문은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제까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발표한 한 편의 논문으로 “아침에 눈을 떠보니 유명 해 졌더라”라는 말처럼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카오는 이와 같이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그 후 ITT의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순탄한 영광의 대로를 걷게 된다.



 



이 논문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이제까지 궁금한 부분이 많았던 광섬유에 대한 제반 요소 데이터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광섬유의 굵기는 광파장의 길이를 고려해 볼 때 100마이크론 정도여야 하고, 코아와 코아를 둘러싸고 있는 크래딩의 굴절계수 차이, 장거리 전송에는 그 손실이 20dB/km 이하의 요건, 광섬유가 휠 때 생기는 손실, 광섬유 내의 모드구조, 또한 표면파의 생성존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 비금속 유리재료의 순도와 손실과의 관계 등등, 이와 같이 광통신의 기본요건을 세밀히 명시하였다.



 



그 당시는 저 손실 광섬유가 나오기 전이어서 금속봉을 사용하여 표면파의 손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했다. 알려진 것처럼 표면이 매끈한 금속봉이나 와이어에서는 표면파 (Surface Wave)가 생기지 않고 최저 모드는 TE01 이다. TE01 모드는 동심원의 전기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류는 금속봉의 표면을 따라서만 흐르게 된다. 그래서 구리를 절약 하기 위해 알미늄 봉을 구리관에 넣어 사출하게 되면 중앙에는 알미늄, 표면에는 구리로 덮어있는 형태의 동과 알미늄의 복합전선이 만들어진다. 전류는 물론 표면에만 흐르게 되어 구리재료를 그만큼 절약 할 수 있다. 광섬유가 나오기 전 잠시 나타난 미리파 도파관도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표면파는 정상분포인 HE11 모드이다. 금속봉을 사용하여 광 도파로의 최저 모드인 HE11를 유도하기 위하여 그 표면을 따라, 주기적인 기복이 생기게 가공하여 유도저항을 변화 시켰다. 그 저항의 값은 기복의 핏치와 깊이에 따라 결정되며 어느 특정 값에 이르면 TE01 대신 HE11 모드가 형성 된다.



 



카오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광섬유의 상대적 손실에 대하여 연구 하였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이고 간단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들에 얽매여 무척 고심 했음을 역력히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광섬유 제조 공정에 대하여서도 설명 하였다.



 



이 논문이 발표된 후 코오닝 회사(미국)는 광섬유 개발에 힘을 쏟아 광통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회사에서 1970년도에 개발된 저 손실 광섬유의 출현이 도화선이 되어 이때부터 광섬유 관련 연구가 불꽃처럼 일어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연구에 선진국들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이에 따라 광섬유 개발은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각국의 광섬유 연구개발에 대하여는 뒤에 가서 더 기술 하겠다.



 



광통신의 시작



알다시피 금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Charles K. Kao 박사, Willard S. Boyle박사, George E. Smith박사, 세 분이 수상하였다. 이중 후자의 두 사람(Boyle Smith) Bell연구소에서 CCD를 고안한 공로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초창기의 광섬유 개발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유감스럽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고 카오 만을 소개 하겠다.



 



이번 노벨상금의 절반을 받게 된 카오의 이력을 보면 영국의 STL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1965년에 런던 대학의 전기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966 PROC. IEE에 발표된 “Dielectric-fibre surface waveguides for optical frequencies”라는 논문이 노벨상을 받게 된 주업적이다. 이 논문에는 광섬유를 광통신의 매체로서 필요한 요건, 재료 및 제조공정을 포함하여 광신호의 전달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음은 앞에서 언급 했다.



그 파급효과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광통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게 되였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기술한 개발과정에서 역력히 알 수 있다.



 



이 논문을 보고 광섬유 개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곳은 다름이 아닌 미국의 코오닝회사 이다. 코오닝은 유리를 주 종목으로 개발하는 회사인데 그 역사가 150년이 넘는 곳이다.



그래서 유리에 관한 것이라면 그 누구 보다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우러 박사를 중심으로 켘 등이 연구팀을 형성하고 광섬유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저 손실 유리물질을 찾기 위해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을 선별하여 합성해 보았다.



그러나 원하는 저 손실치인 20dB/km까지 도달 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유리의 속성을 잘 아는 그들은 SiO2의 유리에서만 불순물을 쉽게 제거 할 수 있어 저 손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실험에 실험을 거듭 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광섬유의 구조는 코아의 굴절계수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크래딩 보다 약간 높아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소량의 첨가물을 시리카 코아에 혼합시켜야 한다.



 



코오닝이 처음 시도한 첨가물은 타아타니아(TiO2) 였다. 이물질은 저 손실을 구현 할 수는 있으나 제작한 광섬유를 다시 가열하여 소결을 시켜야만 저 손실을 얻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 당시는 광섬유의 표면을 보호하는 코오팅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여서 광섬유를 외부의 충격이나 주위의 습기에서 보호 할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럿트거스대학 요업과에서 유리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우러팀에 합류한 슐쓰박사에 의하여 해결 되었다. 슐쓰는 시리카와 잘 어울려 유리상태에서 안정성을 유지하는 저머니아(GeO2)를 사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이제까지의 어려움을 해결 하였고, 저 손실용으로서 지금까지도 이보다 좋은 첨가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코오닝사의 광섬유 제조용 장비인 OVD(Outside Vapor Phase Deposition)의 약도는 아래그림과 같다.



 





 





그림1: OVD 공법.



 



위 그림1(a)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순도가 높은 화학물질인 SiCl4, O2, CH4 는 토치를 통하여 연소가 일어나고, 화학반응으로 생성된 SiO2는 고속으로 사출 되어 탄소봉에 부딪혀 눈처럼 하얗게 쌓인다. 이렇게 퇴적되어 만들어진 모재를 전기로에 넣어서 녹이면 투명한 유리봉이 만들어 진다. 마지막 단계로, 전기로에 넣어서 광섬유를 뽑는다. 이것이 코닝의 광섬유 제조 방법이다. 한편으로 60년도 말경에 벨 연구소에서도 소규모로 광섬유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원소들로 구성된 저온유리를 사용하여 저 손실 광섬유를 시도 했으니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여러 방면으로 궁리를 해도 불순물 제거에 어려움이 많아 결과적으로 저 손실 광섬유를 획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의 Post Office Research Center 에서도 벨 연구소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였고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여러 곳에서 다원소로 구성된 저온유리를 가지고 저 손실을 시도 했으나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유리는 그 손실이 보통 1000dB/km 정도 인데 각종 화합물 원료들을 정제하여 불순물을 제거해도 100dB/km 이하로 내려가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연구소들이 저온 유리에서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유리가 녹는 온도가 섭시 500도 정도로 낮아서 가공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리카 유리는 섭시 2000도 근방에서 융해하기 때문에 고온 물질로합성하고 가공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여기에서 언급해 둘 것은 이렇게 연구소들이 비밀리에 경쟁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었지만 연구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대학이 광섬유 연구에 참여 하는 것을 꺼려했고, 정부의 지원도 없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초기 광섬유 연구개발에 대한 대학의 공헌이 극히 적었다.



  



1970년이 되어서야 코오닝 회사에서 20dB/km의 저 손실 광섬유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고, 이 결과가 광섬유 제 일호의 출현이 되었다. 그 후 코오닝 회사는 한동안 여러 학회의 학술 발표에서도 자사의 광섬유의 전송 손실에 대한 결과만 발표할 뿐 재료의 조성이라든지 제조공정 등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학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궁금증을 더 더욱 증폭시킬 뿐 연구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오히려 학술 발표라기 보다 마치 요사이 TV 에서 보는 광고 선전과 흡사하였다. 듣는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발표자는 거만하게 보였다.



 



이런 상항에서 연구자들은 더 더욱 분발하게 되고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드디어 벨 연구소에서도 저 손실 시리카 광섬유를 만드는데 성공 했다. 그 결과를 1974년 일본 쿄도에서 열린 International Congress of Glasses 학회에서 맥체스니 박사가 코오닝 회사와는 달리 저 손실 광섬유에 관한 내용들을 모두 공개 해 버렸다. 이때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일본의 NTT연구소와 대기업의 사람들이었다.



 



그 동안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광섬유 개발에 관심이 대단했으나 정보가 완전히 차단



되어 있어서 어떻게 연구를 시작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었다.



이러던 차에, 벨 연구소 사람이 일본에 와서 이제까지의 궁금증을 싹 씻어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맥체스니의 발표를 가리켜 "맥체스니 쇽쿠” 라



부른다.



1974년에 기름파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그렇게 연구내용을 공개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AT&T 산하에 있던 벨 연구소는 1953년도에 공포된 미국연방정부의 독과점금지법에 의해서 경쟁회사에서 요구 할 때는 기술을 공개하게 되어 있고, 특허 사용권도 허용해 주기 때문에 연구성과가 나오면 그때마다 공개를 허용하고 있어 전부 공개하였던 것이다. 한 편으로 일본이 광통신 기술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1950년대 초, 트랜지스터 기술을 획득하는데 무척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광통신 분야도 반도체와 같은 형태로 발전 할 것으로 판단하여 미리 서둘렀던 것이다. 벨 연구소에서는 MCVD(Modified Chemical Vapor-phase Deposition) 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시리카 광섬유를 만들었다. 그 장비는 그림2와 같다.



 











           그림 2: MCVD 쟝비



 



그 공법은 코닝사의 것과는 달리 시리카 관의 내부에 순도가 높은 SiCl4, O2,를 통과 시키면서 관 외부에서 수소토치로 가열하면 관 내부에서 화물간에 반응을 일으켜 SiO2가 생성한다. 이 방법은 시리카관 내부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명 Inside Deposition Method 라고도 한고, 반면 코오닝 것은 Outside Deposition Method 라고 한다. 이렇게 생성된 SiO2 는 관 내부표면에서 퇴적하게 되어 축 방향으로 박막을 형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GeO2 의 첨가물도 같이 합류하여 원하는 굴절계수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공정은 그 시리카 관을 가열하여 봉으로 만든다.



 



이 봉을 사용해 광섬유 인출기에서 광섬유를 뽑으면 공정은 다 끝나는 셈이다. 1970년에 광섬유가 개발 되었지만 이 MCVD 공법이 나오기 전 까지는 저 손실 광섬유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벨 연구소에서는 전송실험을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그림 3과 같은 광섬유를 고안했다. 모재의 [그림 3(a)] 단면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시리카 유리관 내에 시리카 유리판을 넣고 그 위에 순도가 높은 가는 봉을 올려 고정시킨 다음, 전기로에 넣어서 섬유를 뽑으면 그림 3(b)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는 봉은 코아가 되고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공기가 크래딩이 된다. 코아와 크래딩으로 특이한 광섬유가 생긴 것이다. 그 외에도 시리카 관을 사용하여 광섬유를 뽑아서 그 가운데 생긴 구멍에 저 손실 액체를 채워서 전송실험을 했었다. 



 



 





 



             (a)                   (b) 



        그림 3:  초기의 저손실 광섬유



 



그 후 MCVD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광섬유를 만들자 이들은 다 사라지게 되였다. 그러나 그림3(b)의 광섬유는 지금에 와서는 PCF(Photonic Crystal Fiber)의 원조가 되였다. 이렇게 특수광섬유로서 다시 등장하여 각광을 받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을 보고 인간만사는 새옹지마라는 옛말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런 것들이 그 당시 광통신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신 기술의 파급효과



코닝의 모오러, ITT의 카오, AT&T의 밀러등이 모여서 광통신 학회를 조직하게 되어 지금의 OFC가 탄생 한 것이다. 그 첫 모임은 1975년 미국의 버지니아주의 윌리암스버그에서 가졌는데, 그 곳을 택한 이유는 영국의 이주자들이 맨 처음 미국에 정착한 곳이라, 그러한 정신으로 OFC도 광섬유 연구에 이바지 하겠다는 뜻으로 생각 된다.



그때에 총 참가인원수는 316명 이였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일본에서 왔었다. 학회는 격년으로 개최하도록 하여 그 다음 회의는 1977년도 그 전과 같이 윌리암스버그에서 열렸다.



일본에서도 광통신에 관한 국제회의를 조직하고 명칭을 IOOC라 칭하고 1977년 여름 일본 도쿄에서 개최했다. 참가인원수는 총 580명 이었다. 이렇게 광통신분야 학회는 급진적으로 늘어나서 지금 국내,국제 학회는 수없이 많아졌다.



1975년에 발족한 OFC는 매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광섬유의 전성기였던 2001년을 정점으로 그 해는 유례가 드문 40,000명이 참가 했다. 그 후 경제적 불황 등으로 감소 했으나, 현재 매년 참가 인원수 10,000명선은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학회의 발전 상황을 예로 들어 카오의 주 업적을 계량화 해봤다.



 



1977년에 앞에서 언급한 IOOC에 참석하고 일본의 여러 회사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그런다음 일본 사람들이 말한 소위 “맥체스니 쇼크”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그가 1974년에 쿄도에서 공개한 MCVD장비를 그대로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사용하여 광섬유를 연구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섯 개의 회사 연구소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모두 같은 방법으로 광섬유를 만들고 있어 의아해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 광섬유 연구에 대해서 광통신의 핵심부품에 대해 NTT가 개발의 주도권을 가지고 그 아래 3개의 전선회사 연구소가 있었고 개발된 기술은 다 같이 공유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렇게 단합된 연구를 하며 개발을 가속화 했고 그 당시 일본의 입장으로 볼 때 가장 효율성 있는 방법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일본의 상기 세 연구소와 NTT가 기술교류를 하면서 각각 일년에 한번씩 방문하기로 하였는데 벨 연구소에서 한번 가면, 그쪽에서는 4개 팀이 3개월 마다 한 팀씩 오게 된다. 얼핏 생각하면 공평한 것 같지만 잘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



네 팀이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일본은 네 번 방문 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빠르게 기술정보를 입수하여 빠른 속도로 개발해 나갔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정이 간편한 MCVD를 사용하였었다. 일본도 그 중의 하나였으나 앞으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고유의 공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VAD(Vapor Phase Axial Deposition)이라는 공법을 개발 하였다. 그리고 NTT와 거래하는 회사들은 이 공법만을 사용토록 했다. 이 공법의 원리는 코닝이 개발한 OVD와 같고, 다른 점은 다만 반경 방향이 아니고 축 방향으로 모재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코아의 굴절분포를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중모드 광섬유를 만드는 데는 불리하였다.



 



그러나 광섬유 접속기술이 지속적으로 발달하고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장거리 광통신이 본격화 되자 정보량을 많이 다룰 수 있는 단일모드 광섬유가 각광을 받게 되고, 또한 대량생산이 필요 하게 되었다. VAD는 모재의 크기에 제약이 적어 광섬유 양산에 유리하다.         현재 광섬유 생산에 OVD, MCVD, VAD 의 세 공법이 사용되고 있다. 그 동안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기술들이 향상하고 생산성도 놀랄 정도로 향상 되었다.



이상은 모재를 만드는 공정이고 그 다음 이 모재에서 광섬유를 뽑아야 하는데 매우 순도가 높은 시리카 유리인데, 이 유리는 고온물질로서 약 2000 C 도에서 가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발초기에는 광섬유 뽑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발로 생산성은 월등히 향상 되였다. 예를 들면, 종래에는 2 cm 정도 직경의 모재에서 초속 5m~10 m 정도로 광섬유를 뽑아 왔으나 지금은 모재의 직경이 15cm , 길이는 1.5 m 되는 모재를 초당 35 m로 뽑고 한 모재에서 2000 km 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광섬유를 생산 한다.



한때는 광섬유의 단가는 1 m 5 센트였으나 모재의 직경이나 길이가 대형화 되고 광섬유 인출속도도 35m/s로 향상 되어 1센트/m 근방까지 이르게 되었다. 고속으로 광섬유를 인출할 때 수반되는 난제는 코팅하는 문제이다. 유리섬유의 표면을 보호하고 유리가 가지는 강한 강도를 가지게 하려면 광섬유 인출과 동시에 포리머 코팅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들은 200 C 전후에서 인화하여 연소하게 된다. 광섬유는 약 2000 C인 모재에서 인출되면서 동시에 코팅이 되는데, 코팅 할 때 프래틱에 접촉하는 광섬유의 온도가 100 C 이하로 유지 해야 한다. 이때 광섬유의 인출속도가 빨라지면 코팅과 접촉하는 광섬유의 온도도 따라서 올라가기 때문에 냉각을 시켜 주어야 한다. 이와 같이 광섬유를 뽑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특히 고속 인출을 할 때는 더 했다.



 



이제는 이런 문제들이 다 해소되고 대량생산에 매진하고 있다. 광섬유의 응용은 무수히 많은데 그 중 대표적으로 하나만 말하면 장거리 통신이라고 본다. 장거리 통신의 으뜸은 해저케이블이다. 광 해저케이블은 1988년에 최초로 대서양에 부설되고 이어서 태평양에도 설치되어 지구상의 대륙들은 광케이블로 연결이 되었다. 광섬유의 성능 향상과 광통신 시스템의 발달로 통화의 음질도 월등히 향상되어 장거리, 단거리를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고 간편 하게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요사이 중국에서는 광대한 국토에 차세대 정보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어 이에 필요한 광섬유 물량 때문에 광섬유의 경기는 전세계적으로 호황을 이루고 있어 희소식이다.



 



 끝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카오 박사는 1996 11월에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심포지움에 참석하여 광섬유연구에 관하여 초청강연을 하였다. 한국을 방문 할 당시는 홍콩대학 총장을 맡고 있었다.



 



저자약력





백운출 교수는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Ph.D.(1969)후 Bell 연구소 에서 레이저와 광섬유 연구 (MTS, DMTS, Bell Labs Fellow:1969-1991),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부원장(1991-1993), 광주과학기술원 교수(1994-2001), 석좌교수(2001-2006), 명예교수(2006~ ), WCU교수(2008~ ). 벨 연구소에서 논문상, 공로상,등 다수 수상, 미국광학회 공학우수상, KAST 덕명공학상, 미국 학술원(NAE)회원. (ucpaek@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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