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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과학 세상/박지웅 지스트 교수]政·經·官·言에 이공계 박사를
우리나라나 선진국이나 이공학도가 전문성을 살려 나아가는 전형적인 진로는 대학 졸업 후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나 기업 또는 국공립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물론 긴 세월이 걸린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학사 4년, 석박사 5∼7년,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 1∼2년을 마치면 30세 중반을 쉬이 넘긴다.
이 과정에서 이공학도들은 체계적으로 논리적 훈련을 받게 된다. 수많은 실험의 설계 및 실행, 그룹모임과 토론활동, 슬라이드나 보고서 작성, 그리고 국내외 학회에서의 논문 발표 등이 그것이다. 우리 이공계 인력은 해외 유학으로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한 경험 등 언어와 국제화 능력까지 갖춘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과학적 활동으로 훈련한 데다 국제적 경험까지 갖춘 이공계 인력들이 모두 교수나 연구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얼마 전 과학 잡지 ‘사이언스’의 편집위원장인 브루스 앨버트 박사가 이공계 전문 인력의 새로운 진로에 대해 쓴 글은 이런 질문에 시사점을 준다.
글의 요지는 이공학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연구가 아닌 다른 직업, 즉 정부, 초중등교육, 비정부단체, 미디어, 기업 등의 분야에서도 직업을 구할 수 있게 사회 전체가 이를 독려하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선진국에서는 이공계 전문 인력의 타 분야 진출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앨버트 박사는 미국의 한 하원의원과 국립아카데미의 수장이 물리학자라고 예를 들었다. 필자 역시 미국 대학에서 연구원 시절에 유명한 경영 컨설팅 회사가 이공계 박사들을 매우 좋은 조건으로 채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문제를 찾고 분석하고 풀어나가는 과학적인 접근방법이 경영 컨설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우수한 연구업적을 내 좋은 대학에서 교수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이 같은 사기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이공계 분야 전문 직종이 이공계 출신 전문 인력에 개방돼 있지 않고, 심지어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연구사업, 교육제도 등마저도 주로 고시 출신 관료들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외국의 이런 분위기가 부러울 뿐이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21세기는 에너지, 환경, 의료문제와 경제를 책임질 원천기술 확보 등의 문제를 국가적으로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실무 현장에서는 행정, 경제 전문가는 물론 과학자와 공학자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과학자와 공학자가 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도 진출해 과학과의 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거두도록 해야 한다.
몇 년 전 정부가 중상위직 공무원에 이공계 출신 박사와 기술사를 일정 비율 채용한 적이 있다. 당장에는 작은 부작용이 있거나 실효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더라도 이런 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실무조직 요소요소에 이공계 전문인력 층이 두꺼워지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나 연구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들은 우수한 과학자, 공학자뿐만 아니라 다른 새로운 진로를 추구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독려하고 지원했으면 한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이 단기 연수나 방문교육, 세미나 등의 기회를 통해 행정, 기획, 경영과 관련된 지식이나 활동에 더욱더 자주 노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
<언론보도>
-2008.5.19(월) 동아일보 칼럼 과학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