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ltimedia mosaic of moments at GIST
전통은 항상 아방가르드였다.
김 상 윤(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상임이사, 광주과학기술원 감사)
의향, 예향, 미향을 광주의 표상이라고 한다. 이 셋을 합치면 ‘문화도시’ 정도가 될 터인데, 요즈음은 아예 ‘아시아의 문화중심’이 되어 보겠다는 포부로 광주가 요동치고 있다. 광주의 문화전통이 뿌리가 깊고 다양하다고는 하나, 전통은 ‘문화중심도시’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그리스의 문명은 서양의 뿌리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그리스를 서양문화의 중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전통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지, 전통이 있으니 지금도 문화중심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사실 전통은 항상 낡은 틀을 깨는 험난한 고투 속에서 만들어졌다. 임억령이나 김인후의 시는 새롭게 정착하는 도학세계의 이상을 담은 것이고, 윤두서의 그림은 새롭게 대두하는 실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치 허유의 남종화 역시 북학파의 정신을 토대로 하고 있고, 동편제의 대가 송만갑의 소리는 전통적인 소리와 다르다고 하여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질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전통은 항상 아방가르드였던 것이다.
전통은 모름지기 그 전통이 지니고 있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고 형식은 부차적인 것이다. 내용이 바뀌면 형식은 내용에 맞게 바뀌는 것이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전통 속에 내재한 시대정신이나 실험정신은 버리고 그 형식이나 보듬고 있는 것은 전통의 쓰레기를 붙들고 몸부림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자세는 문화적 보수주의가 되어 새로운 창조의 질곡이 되기 십상이다.
소치 허유가 청조 고증학의 입고출신(入古出新)에 입각하여 원말 사대가를 모델로 ‘입고’하고 작대기산수로 ‘출신’하였다면, 의재나 남농은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토착화시켰고 오지호는 인상주의라는 무기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실험정신이 우리 전통의 뿌리임이 분명하다.
조정래나 김지하, 김남주 등의 문학, 80~90년대의 현장 속에서 피어난 민중미술과 민중가요들이 전통의 계승과 참된 전통의 재창조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광주가 항상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듯이, 광주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문화운동의 선봉에 섰듯이, 전위적 정신으로 자신을 재무장하는 것이야말로 전통을 되살리고 아시아의 ‘문화중심’이 되는 첩경이 될 것이다. 물이 차야 배가 뜰 수 있듯이 문화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거기에 시대정신과 실험정신을 부어넣을 수만 있다면 광주는 진정한 ‘문화중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홍보협력팀, 2007.6.4>
<언론보도현황>
- 전남일보 6월4일자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