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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소장 과학칼럼(중앙일보 2월24일자)-찰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빛

  • 임성훈
  • 등록일 : 2007.02.28
  • 조회수 : 2640

중앙일보 2007.2.24일자에 게재된 이종민 소장님의 과학칼럼 원문을 게재합니다. 


[과학칼럼] 찰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빛 [중앙일보, 2007.2.24(토)]
 


이종민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장 겸 신소재공학과 교수

나는 "스펀지"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재미있는 현상을 과학적인 예를 들어 가며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현미경 영상이나 초고속 카메라 영상이 많이 등장한다. 시청자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나 현상을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던가! 과학적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현미경은 빛을 이용해 작은 것을 확대해 볼 수 있는 장치다. 이 현미경으로 곤충들의 세계를 들여다본 "마이크로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이슬을 마시는 개미, 진딧물을 먹는 무당벌레 등 30여 종 곤충들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보여 주어 일반인들이 곤충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수한 현미경들은 이제 미크론 세계보다 1000분의 1이나 작은 나노의 세계를 보여 준다. 과학자들은 나노의 세계를 넘어 원자나 분자의 미시세계(微視世界)를 직접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현미경은 거의 정지돼 있는 현상만을 확대해 보여줄 뿐이다.


미시세계에서는 원자나 분자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체상태의 분자는 시속 수천㎞로 날아다니고 10조 분의 1초에 한 번씩 뒤집기를 한다. 이러한 분자들이 화학반응을 할 때는 100조 분의 1초 안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원자나 분자들의 미시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 속의 세계, 즉 "찰나의 세계"이기도 하다. 찰나는 극히 짧은 시간을 이르는 불교 용어다. 그러면 이 찰나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주 빠른 움직임을 보기 위해서는 고속촬영을 해야 한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올림픽경기에서 100m 달리기 선수들의 등수를 가려 내기 위해 골인 지점에서 사진을 1초에 10000번이나 찍는다. 즉 선수들 간의 간격을 0.1㎜ 단위의 차이로 구분해 정확히 등수를 가리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세계에서 수십조에서 수백조 분의 1초 안에 일어나는 찰나의 현상을 보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빠르게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펨토초 레이저는 대략 1000조 분의 1초(펨토초) 동안만 켜졌다 꺼지는 시간 폭을 갖는 펄스 빛을 낸다. 그래서 펨토초 펄스 빛을 분자에 조사하면 펨토초 동안만 빛과 분자가 서로 만나게 된다. 분자를 만난 뒤 밖으로 나온 빛은 펨토초 동안 분자와 만난 정보를 그대로 갖고 있다. 이 정보를 분석하면 그 시간 동안의 분자 상태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펨토초 동안만 반짝이는 빛을 이용해 대략 1000조 분의 1초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래서 100조 분의 1초 동안 일어나는 분자의 화학반응을 광지연 방식의 펨토초 연속 반짝이 빛을 이용하면 10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화학반응 동안 분자들이 서로 결합 혹은 분리되는 현상을 동영상처럼 찍어 볼 수 있는 것이다. 펨토초 레이저가 찰나의 세계를 보는 초고속 촬영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캘리포니아공대의 아메드 즈웨일 교수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분자 화학반응의 중간 과정을 이 펨토초 촬영기를 이용해 보여 주고 "펨토화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9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하면 나뭇잎이 태양빛 에너지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는 과정, 햇빛에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물체의 영상 빛이 전기신호로 바뀌어 시신경으로 전달되는 과정 등에서 각각 일어나는 분자들의 화학반응 순간도 영화처럼 찍을 수 있다.


빛은 망원경을 통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보여 주며, 현미경을 통해서는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로부터 미지의 나노 세계까지 보여 준다. 최근에는 펨토초보다 1000배나 더 짧게 반짝이는 아토초(100경 분의 1초)의 빛까지 발생시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찰나의 세계까지 보여 주는 빛은 앞으로 또 어떤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할지 궁금하다.

콘텐츠담당 : 대외협력팀(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