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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석좌교수, 세계일보 "사이언스리뷰" 기고 - <신의 입자>

  • 이석호
  • 등록일 : 2013.10.17
  • 조회수 : 2170

 

신의 입자

 

김희준 석좌교수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에서 일이 생기고(道生一), 일에서 이가 생기고(一生二), 이에서 삼이 생기고(二生三), 삼에서 만물이 생겼다(三生萬物)”라고 했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보면 빅뱅의 순간에 우주적 원리, 즉 도로부터 에너지가 생기고, 아주 초기의 빅뱅 우주에서 에너지는 빛과 물질로 바뀌고, 빛과 물질은 상호 변환을 하면서 양성자·중성자·전자를 만들고, 나중에 양성자·중성자·전자가 조합을 이뤄 자연에 존재하는 수소·탄소·산소·철·우라늄 등 약 100가지 화학원소와 나아가서는 만물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노자가 과학의 관점에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기막힌 대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一)은 우주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총량이 보존되면서 모든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138억 년 전, 빅뱅의 순간에 우주에 주어진 것은 에너지인 셈이다. 그런데 현재 우주에는 질량이 있는 물질이라는 형태의 에너지가 있고, 또 질량이 없는 빛이라는 형태의 에너지가 있다. 물론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우주 전체 에너지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암흑에너지가 있지만 우리 주위의 만물을 만드는 에너지는 물질과 빛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빅뱅의 에너지는 물질도 빛도 아닌 순수한 에너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한 에너지가 질량을 가진 물질 입자가 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고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 그리고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중성자·전자, 또 양성자와 중성자를 구성하는 쿼크들 모두 질량을 가진 물질이기 때문에 입자가 질량을 가지게 된 순간은 우리 자신의 궁극적 기원에 해당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입자가 질량을 가지는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은 우주의 가장 심오한 비밀 중 하나를 푸는 것이다.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힉스는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새로운 종류의 입자를 제안했다. 그리고 올해 3월14일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힉스 입자라고 불리는 이 입자의 발견을 발표했다. 이론적으로 제안된 지 거의 50년 만에 강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이 일에 참여한 수많은 과학자와 투여된 막대한 예산 덕분이다. 이 입자를 힉스 입자로 명명한 것은 이휘소 박사라고 알려졌는데, 한편 리언 레더먼은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라고 불렀다. 힉스 입자가 있어야 쿼크, 전자 등이 질량을 가지고 태어나서 현재 우주를 만들 수 있을 테니 신의 입자라 할 만하다. 그런데 한편 이 입자의 검출이 너무나 어렵다 보니 레더먼은 신의 입자는 ‘망할 놈의 입자(The God Damn Particle)’라는 익살도 부렸다.

 

 

   힉스 입자가 제안된 지 50년 만에, 그리고 확인된 지 7개월 만에 힉스, 또 독립적으로 힉스 메커니즘의 이론적 토대를 연구한 벨기에의 앙글레르에게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기초과학이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또 인간이 어디까지 도에 접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최상의 사례라고 할 만하다. 흥미롭게도 힉스 입자는 빅뱅의 순간에 다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는 자신은 우주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힉스 입자를 통해 양성자·중성자·전자가 태어나고 138억년 후에 이들로 구성된 힉스와 입자가속기와 또 수많은 과학자의 땀을 통해 힉스 입자가 다시 만들어지고 확인됐다면, 원래의 힉스 입자는 사라졌지만 자신이 배출한 만물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 셈이니 노자도 무릎을 칠 일이다. 만물이 되돌아가서 일생이(一生二)의 비밀을 풀어낸 셈이니 말이다.

 

 

김희준 GIST 석좌교수·화학(2013년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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