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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석좌교수, 세계일보 "사이언스 리뷰" 기고 - <세 가지 잡음>

  • 이석호
  • 등록일 : 2013.06.25
  • 조회수 : 1822

세 가지 잡음

 

김희준 석좌교수

 

 

  요즘은 아파트 층간 소음까지 규제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원하지 않는 잡음이 항상 있는데, 귀에 거슬리게 소리가 큰 때에는 소음이 된다. 나도 요즘 소음에 민감한데, 위층에서 들리는 어린애 콩콩 뛰는 소리는 오히려 반갑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내가 소음을 내는 경우이다. 나는 뒤늦게 클라리넷을 배워 시니어 앙상블에 끼어서 서투른 연주를 즐기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아파트에서 연습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따라서 주말 낮 시간에 연습을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하기는 요즘 주말 낮 시간에는 여기저기에서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등 악기 연습하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층간소음·황우석 사태 세상 시끌

 

  잡음하면 생각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2004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이다. 당시 세계 최초로 확보했다고 발표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의 유전물질인 DNA와 원래 체세포의 DNA를 비교 분석한 결과가 이 논문에 그림으로 실렸다. 두 시료에서 누가 봐도 똑같은 시그널 몇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 보였다. 나도 그 유명한 논문을 구경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사이언스지를 뒤져 훑어봤다. 그런데 DNA 분석 결과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이것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실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전기적 신호로 나타나고 기록되게 마련이다. 한편 원하는 신호에는 반드시 전기적 잡음이 따른다. 그리고 이런 잡음은 무작위적이기 때문에 매번 같을 수는 절대 없다. 하지만 그 논문에는 DNA 시그널뿐 아니라 잡음까지도 정확히 같게 나타났다. 마치 쓰나미가 두 번 몰려왔는데 쓰나미의 파고나 간격뿐 아니라 그 바탕의 작은 파도까지 정확히 일치한 셈이다. 나중에 이 결과가 조작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결국 같은 그림을 두 번 사용한 것이 분명해졌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 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과학의 역사에도 노벨상급의 유명한 잡음이 있다. 1960년대 초 미국 뉴저지주의 벨연구소에서 펜지어스와 윌슨이라는 두 천문학자가 천체 연구를 위해 대형 마이크로파 안테나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 안테나는 원래 에코 통신위성 추적용으로 만든 것인데 용도가 다 돼 천문학 연구에 사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음이 계속 잡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었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안테나의 빈틈을 때우고 내부를 청소하는 등 별짓 다 했지만 이 잡음을 제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잡음은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사시사철에 걸쳐 일정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잡음이라고 모두 쓸데없지 않아

 

  한편 벨연구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프린스턴대의 디키는 우주배경에 깔려 있으리라 예상되는 낮은 마이크로파를 검출하기 위해 마이크로파 안테나를 제작하고 있었다. 펜지어스와 윌슨의 결과를 전해들은 디키는 그것이 자신들이 찾고 있던 마이크로파 신호인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전부터 가모브 등 여러 과학자는 우주가 한 점에서 대폭발로 출발해 팽창하고 있다면 빅뱅의 순간 한 점에 몰려있던 우주전체의 에너지가 현재의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을 테고 그렇다면 파장이 길고 에너지가 낮은 마이크로파 복사로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펜지어스와 윌슨은 빅뱅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아무튼 펜지어스와 윌슨은 1965년에 발표한 이 잡음 덕분에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리고 보면 잡음이라고 해서 모두 쓸데없는 것은 아닌 듯싶다. 우주배경복사가 빅뱅의 신호이듯 콩콩 뛰는 어린애 발소리도 생명의 신호라고 귀엽게 볼 수는 없을까?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화학 (2013년 6월 25일자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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