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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석좌교수, 세계일보 "사이언스리뷰" 기고 - <과학 발전의 패러다임>

  • 이석호
  • 등록일 : 2013.04.18
  • 조회수 : 1451

과학 발전의 패러다임

 

김희준 지스트 석좌교수

 

  최근 우주의 나이가 138억년으로 밝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9년 5월에 발사된 플랑크 우주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가 보다 정밀하게 측정되기 전까지는 우주의 나이를 137억년으로 받아들였었다. 137억년은 윌킨슨마이크로파관측위성(WMAP)이라는 플랑크의 전 세대 탐사선이 측정한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차이가 현재 우주의 거시적 구조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모델링해 얻은 값으로, 1억년 정도의 오차를 가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니까 우주의 나이는 136억∼138억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달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는 138억2000만년이고, 오차는 5000만년으로 줄어 보다 정밀한 측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예측, 관찰로 확인되는 절차 필요

 

  언뜻 생각하면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건, 138억년이건 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억달러의 예산과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노력으로 얻은 관측 자료가 종전의 결과를 확인하는 동시에 정확도를 향상시켰다는 것은 과학 발전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관측 결과가 빅뱅 우주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우주배경복사에 관한 것이라면 더구나 그렇다. 1929년 허블 법칙이 나오면서 우주 팽창이 알려졌지만 그 시작점인 빅뱅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1965년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고 나서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모인 작고 뜨거운 우주가 팽창해 생성됐다면 현재 우주의 배경에 낮은 에너지가 깔려 있으리라 예상되는데, 그 에너지가 절대온도 3도에 해당하는 배경복사로 관찰되면서 빅뱅 우주론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이론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일단 관찰 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가 대폭발로 시작됐다는 빅뱅 우주론이 허블의 관찰을 설명할 수 있었듯 말이다. 그런데 그 이론이 확실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찰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예측이 관찰로 확인되는 절차가 필요하다. 빅뱅 우주론은 플랑크가 추가로 확인한 우주배경복사가 그 예측에 해당하는 것이다.

 

  약 200년 전 원자론이 자리를 잡을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18세기 말에 라부아지에의 질량보존 법칙과 프루스트의 일정성분비 법칙이 알려지면서 물질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관찰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다. 예컨대 고체인 탄소 12g을 기체인 산소 32g으로 태웠더니 모두 기체인 이산화탄소로 바뀌었는데, 이때 생긴 이산화탄소를 모두 붙잡아서 무게를 재었더니 44g으로 나타났다면 화학반응은 원자의 재조합인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학은 합리성에 기반 두고 발전

 

  또 대리석을 분해해 얻은 이산화탄소에 탄소와 산소가 12g 대 32g 비율로 들어 있고, 내숨의 이산화탄소에도 탄소와 산소가 같은 비율이라면 그것도 원자를 떠나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19세기 초 영국의 돌턴은 원자론을 제안하면서 하나의 예측을 내놓았다. 탄소와 산소가 반응해 이산화탄소(CO2)와 일산화탄소(CO)를 만들 듯 다른 화합물에는 원자가 결합하는 비율 사이에 배수의 관계가 존재하리라는 배수비례 법칙이 그것이다. 이산화탄소에서 일정한 무게의 탄소당 산소의 무게는 일산화탄소 경우의 두 배인데 화학반응이 원자 사이의 결합이 아니고 물감을 섞는 식의 혼합이라면 배수비례가 성립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원자론에서도 보았고, 또 200년 후에 빅뱅 우주론에서도 보았듯이 과학은 이러한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발전한다. 자연 자체가 생각이 있듯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만물이 말(word)이라면 그 배후의 생각(thought)은 무엇일까.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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