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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석좌교수, 세계일보 "사이언스 리뷰" 기고 - <무중력에의 향수>

  • 이석호
  • 등록일 : 2013.05.27
  • 조회수 : 1725

무중력에의 향수

 

김희준 석좌교수

 

 


  내년부터는 2억원 정도를 내면 4분 정도 우주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영국의 억만장자 브랜슨 회장이 후원하는 버진갈락틱이라는 회사의 스페이스십투가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이 우주여행선을 타고 지상 100㎞ 정도의 공간까지 나갔다 돌아오면서 비슷하게나마 무중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 우주여행을 위해 앤젤리나 졸리 부부 등 유명 인사를 포함해 500명 정도의 우주인 후보가 신청을 해놓았고 대기자도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의 중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수백억 광년에 달하는 우주의 규모를 생각하면 100㎞ 정도 나간 걸로 우주여행이라 하기에는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10㎞도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만 해도 상당히 지구를 벗어난 셈이다. 게다가 5㎞ 올라갈 때마다 공기가 절반씩 희박해지기 때문에 100㎞ 고도의 공간은 진공에 가깝고 안락한 지구와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위험부담이 따르는데도 우주로 나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라면 우주 공간에 나가서 별을 바라보는 것이 일차적 목표일 것 같다. 지구의 대기를 벗어나면 공기에 의한 햇빛의 산란이 없다. 따라서 우주선 주위는 밤낮 구별 없이 온통 암흑 세상일 것이다. 거기서 보는 별은 지구대기에 의한 별빛의 흔들림이 없을 테니까 지구에서보다 훨씬 또렷할 것 같다. 그리고 100㎞ 상공에서 암흑의 공간에 떠있는 지구를 보는 것은 환상적일 것이다.

 

  한편 인간이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나려는 숨은 의도는 전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지 억측을 해본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중력을 기피하는 본성이 DNA 유전정보에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조상은 약 40억년 전 태초의 바다에서 태어났는데, 우리의 먼 조상이 바다에서 육지로 진출한 것은 대략 4억년 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상 생명체는 생명의 역사에서 약 36억년, 그러니까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 셈이다.

 

  물에서는 부력 때문에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것이다. 그래서 해파리, 물고기 등 수중 동물은 육상 동물과 달리 튼튼한 골격이 필요 없다. 따라서 약 4억년 전 어떤 바다 동물이 육지로 처음 진출한 때는 지구의 중력이 엄청나게 느껴졌을 테고, 이를 이겨내는 것이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골격과 근육이 발달돼 육상 동물은 중력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중생대에 지구를 호령했던 거대한 공룡의 화석을 보면 두개골에 비해 골격이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몸집이 커질수록 극복해야 할 중력의 중압감도 따라 커졌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태곳적 심어진 DNA영향은 아닐까

 

  네 발을 사용하던 우리 조상이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 중력은 다시 큰 도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기가 걷기 시작할 때 알 수 있듯 넘어지고 다치기 쉬운 직립자세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걷거나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두 발로 서서 중력과 맞서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을 사용해 불을 발견하고 도구를 발명했다. 특히 망원경을 만들어 거시세계를 관찰하고, 현미경으로 미시세계를 관찰하면서 자연을 폭넓게 이해하게 됐다.

 

  생명체가 아직 바닷속에 머물러 있다면 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처음 육상으로 진출한 동물은 하늘의 별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4억년에 걸친 육상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별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별을 바라보고 은하를 관찰하면서 138억년 전 우주의 기원까지 알아낸 인류는 생명의 고향인 바다를 그리워하며 무중력 상태인 우주 공간으로 나가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희준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화학 (세계일보 2013년 5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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